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쿤밍역 칼부림 테러 (문단 편집) == 범인 == 원래 범인은 총 8명이었는데, 초기에 숫자에 대해서 혼선이 있었던 것은 8명(남자 여섯, 여자 둘) 중 한패였던 3명이 2월 27일에 윈난 국경에서 밀입국하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인민경찰|경찰]]에게 이미 체포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3명이 빠진 상태에서 나머지 5명이 렌트카를 타고 쿤밍역으로 이동하여 범행을 저질렀다. 2014년 3월 3일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는 테러범들은 총 8명이었다고 발표했다. 또 이 테러의 총책은 압둘라힘 쿠르단이라는 위구르인으로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 소속이라고 밝혔다. 범행에 가담했던 5명 중 파티굴 토티는 저항하다가 총에 맞아 부상당한 상태로 체포되었고, 나머지 4명은(남자 셋, 여자 하나) 모두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사진을 보면 여자들은 부르카를 입고 범행에 가담했다. 이후 재판에 회부된 테러범 중 파티굴 토티을 제외한 3명의 남자는 범행 모의만 가담하고 정작 실행엔 가담하지 못했던 자들이었다. [[파일:external/i1.sinaimg.cn/U9889P1505DT20140303203135.jpg]] 범행에 쓰인 흉기 초기에 잡힌 3명은 처음엔 자백을 거부하였으나 총을 맞고 생포된 파티굴 토티가 자백하면서 공안부는 체포된 용의자들로부터 테러행위에 대한 자백을 받았다고 발표했으며 이들은 과격 [[이슬람]] 단체 회원으로 중국 당국에 맞서 "[[지하드]]"를 준비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원래 윈난으로 가서 [[중국]]을 출국해 활동하려 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테러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사망한 29명의 희생자들 유족들에게 30만 위안(약 5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테러 사태가 커진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항의했지만 보상금을 더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파일:external/m1.sinaimg.cn/3be8b9b28e32ccf7ba0e41b82452466e_900_456.jpg]] 1심 법정에 나온 피고인들. 동시통역용으로 보이는 헤드폰을 쓰고 법정에 출석한 것을 보면 [[보통화]] 교육을 거의 또는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윈난성 쿤밍시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범행을 모의한 3명은 테러 집단을 조직, 지도한 자는 최소 10년의 징역에 처한다는 중화인민공화국 형법 120조와 의도적 살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형법 232조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1명인 여성 피고인인 "파티굴 토티"는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임신부를 사형에 처할 수 없다는 형법 49조 1항에 의거하여 사형을 면하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범인들은 항소했으나 2심과 3심에서도 형량은 유지되었으며 사형 선고를 받은 3명은 민간인 신분이라 2015년 3월에 범죄를 저지른 장소인 쿤밍으로 이동해서 사형버스에서 [[약물 주사형]] 방식으로 처형되었고 파티굴 토티는 무기수로 복역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